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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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인류의 문화유산 부석사

파도처럼 넘실대며 끝없이 이어지는 산능선과 자연 풍광을 넉넉한 품으로 안은 부석사.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인 부석사는, 화엄의 극치를 깨닫고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의상대사가 676년 화엄의 도리로 국론 통일과 중생 구제를 위해 창건하였습니다.
부석사는 해동화엄의 종찰이자 통일신라의 상징적 사찰입니다. 뿐만 아니라 가람의 배치와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 등의 건축학적 가치 또한 높이 평가됩니다.
또한 전해져 오는 의상대사와 선묘낭자의 애틋하고 숭고한 사랑 이야기는 부석사의 근원 설화가 되었으며, 바다 건너 일본의 화엄불교 성립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문화재 현황

국보 5점 :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 영주 부석사 조사당(국보 제19호),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부석사 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보물 6점 : 영주 북지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1, 2호), 영주 부석사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영주 부석사 고려목판(보물 제735호),

                    영주 부석사 오불회괘불탱(보물 제1562호)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아 산 안쪽에 위치한 입지 특성을 지닌 산사는 한국불교의 교육, 수행, 생활적인 측면이 모두 종합된 공간입니다. 한국불교가 발전했던 역사의 전 과정을 유·무형으로 담고 있는 유산이며, 스님과 신도들이 불교신앙공동체를 구성하여 현재까지 단절 없이 수행과 신앙생활을 유지해 온 지속성 측면에서 산사의 가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인간존엄과 평등
해동화엄의 근본 도량인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입적할 때까지 떠나지 않고 많은 제자를 길러낸 곳입니다.

대사는 통일전쟁 이후 힘든 백성의 처지를 고려하여 왕에게 직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삼국유사 권2에 따르면 "백성의 경제적 안정이 국가의 기본적인 힘이 되며, 정신적 안정이 사회 안정의 토대가 된다"며 문무왕의 왕경 정비와 무리한 축성 중지를 건의하였습니다.

특히 신라 왕실에서 땅과 노비를 내리자 "화엄의 법은 평등하여 사람의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이 없다"며 정중히 거절한 일화는, 인간존엄과 평등이라는 변함 없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합니다.